여름방학을 맞아 잉여시간이 부쩍 늘어난 요즘, 자기 계발에 대한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한 오버액션과 후회의 반복인 나날들이었다. 게다가 트러블이 발생했을 경우 그 상황 여하에 관계없이 나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에 자존감을 회복 프로젝트의 첫걸음으로 우선 자신에 대해 알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MBTI 정식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정식 MBTI의 검사 옵션은 2페이지 분량의 Form M, 4페이지 혹은 12페이지 분량의 FormQ 두 가지가 있었다. 나는 가장 자세한 검사와 많은 양의 데이터를 원했기 때문에 고민 없이 12페이지 분량의 Form Q의 검사지를 골랐다.
옵션에 대해 마음을 굳힌 나는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도중에 네이버 엑스퍼트라는 사이트를 진짜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이트는 엑스퍼트라는 타이틀에 맞게 전문 상담사가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문구가 기입돼 있었고 차후에 의문점이 생기면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냉큼 지갑을 열었다.
결제를 하고 나서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보낸 뒤 기다리길 어언 10분. 강의 중이어서 살짝 늦어졌다는 상담사분의 메시지와 함께 이메일로 인증키가 도착했고, 이 인증키를 어세스타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검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검사 문항은 총합 140여 개. 나는 열과 성을 다해 그것들을 모두 클리어하고 결과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보다시피 INTJ가 나왔다.
사실 다른 유형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왜냐하면 대학 입학 당시 학교에서 진행한 MBTI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을뿐더러, 16 personalities 테스트를 해보았을 때의 결과에서 I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애매한 수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정식 검사도 극적인 연출 없이 INTJ라는 같은 결과를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극적인 부분은 더 강렬하게, 애매한 부분은 더 세세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애매하게 나온 부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밑에서 선호지표의 다면척도 그래프를 보며 서술하겠다.
나는 모임을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많거나 같은 관심사가 아니라면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이 많아 제스처가 많이 삐걱대게 된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닌지라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단 정보전달 위주의 대화를 자연스레 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고민을 들으면 최선을 다해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마법의 소라고둥 같은 느낌이다. 물론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공감을 요하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변호하고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시시비비를 가리며 과실을 비율로 따지려 드는 사회 부적응자적인 화법은 하지 않는다. 난 이것을 성향이 아닌 사회성의 결여에 따른 문제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문제는 외향/내향보다는 사고/감정 파트에서 다루기 적합한 내용이니 그만두겠다. 이미 다 말해버렸지만.
무엇보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으며, 사람이 여유가 없으면 알게 모르게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는 자신을 정비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감각과 직관은 공존하며 상호 보완해야 하는 덕목이라 생각한다. 추상적인 아이디어라도 구체성을 띄지 않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도 현실성이 없다면 그것들은 속이 텅 빈 쭉정이요, 필부들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실용성을 간과하고 개념적인 부분만 추구하려 들면 결과적으로는 그 무엇도 이룩할 수 없으며, 이론과 그것에 대한 입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항목일뿐더러,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즉,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위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내용과 같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감각과 직관 모두를 추구해 나갈 것이며, 이 생각에 변함은 없다.
이번 Form Q 검사에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16 어쩌고 와는 다르게 사고/감정 지표에서 전혀 애매함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외향/내향 지표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보 전달 위주의 화법을 구사하며 고민을 들으면 공감의 표현보다는 해결방안을 먼저 제시하는 극단적 사고 주의자이다.
물론 이런 나에게도 측은지심을 일으키거나 상대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다만 그러한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감정의 전달보다는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좀 더 익숙할 뿐이다. 또한 나는 공감 지능의 부족 및 사회성의 결여를 MBTI로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여느 멍청이들과는 다르게 공감도 잘할 수 있다. 비록 공감의 여부를 나타내는 표현이 "알 것 같아." 일 지라도.
나는 계획 세우기를 참 좋아한다. 현재 대학교 4학년인 나는 가깝게는 이번 달의 일정부터 길게는 대학 졸업 이후의 일까지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나는 얼마 전까지도 기나긴 계획이 예상치 못 한 변수로 인해 플랜 B를 넘어 C, D까지 근본부터 완전히 박살 나는 상황을 많이 경험했다.
실제로 Covid19로 인해 유학길이 막혀 차후 계획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버리거나 일본에 있을 때 근무지와의 계약을 완전히 끝내고 교통편까지 모조리 예매를 마쳐둔 상황에서 그 전날 갑자기 기숙사 청소 핑계로 날짜를 미루는가 하면, 계약 시 관내 기숙사를 주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이 아닌 자동차로 30분 이상이 걸리는 머나먼 오지에 기숙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그 기숙사조차 보일러실을 개량한 방이었는지 계량기가 방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앞에는 부엌, 뒤에는 화장실이 붙어있어 소음으로 푹 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기숙사 청소 핑계로 계약을 미뤘는데도 불구하고 위생상태마저 물티슈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만 해도 새까만 먼지가 묻어 나올 정도로 엉망이어서 곧바로 계약을 파기하고 나왔던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한 연장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나온 당일날이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하려던 전날이었는데, 짐을 가지러 간 홋카이도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 JR선이 완전 마비가 되어 목적지까지 가는데만 한나절이 걸렸으며, 그날 새벽 규모 6.9의 지진을 만나 3일간 고립이 되기도 하였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아무쪼록 이러한 일을 단기간에 모조리 겪은 나로서는 계획에 목숨 걸기보다는 융통성을 갖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가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 그래프는 나와 같은 유형인 INTJ들과 비교한 그래프인데 이것은 나에게 있어 그리 유의미한 지표는 아니다.
비록 16가지의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MBTI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그중에 하나였지만, MBTI 그중에서도 자세한 결과가 나오는 Form Q는 각각의 항목별로 자신이 조금 더 선호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결과적으론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당하게 INTJ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소속감도 약간.
이제 나도 정식 검사를 거쳤으니 누군가에게 MBTI를 질문받았을 때, "잘 모르겠네. 아마도...", "너무 옛날에 해서 확실친 않지만..."과 같은 쓸데없는 수식어를 덧붙여 말하기보다는 자신만만하게 내 유형을 전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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